오분간 ...詩 나희덕

2019. 12. 17. 06:54*~ 좋은 글, 詩


 

 

 

 이 꽃그늘 아래서
 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.
 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
 아니,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.

 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
 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
 이 그늘 아래서
 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,


 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
 내 앞에 멈추면
 여섯 살박이가 뛰어내려 안기는게 아니라
 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.

 내가 늙은 만큼 그는 젊어서
 우리는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.
 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버린 生,


 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
 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
 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
 떨어지는 꽃잎,


 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
 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나는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.

 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.
 아, 저기 버스가 온다.
 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

 詩
나희덕 / 오분간





 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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